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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2-13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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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회활동 말을 잃었다. - 김미옥
글쓴이 : 김경옥 조회 : 20,926
말을 잃었다.
김미옥

어느 햇살 좋은 날이었다. 발코니 청소를 하다가 멈칫했다. 하얀 벽면 가득 웬 파리똥이 새까맸던 것이다. 여름내 파리 한 마리 얼씬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된 걸까?
손으로 만져보고서야 알았다. 파리똥이 아니라 괭이밥 씨앗이었다. 실낱같은 줄기, 밀알보다 작은 씨 주머니가 무슨 힘으로 천장까지 까맣게 쏘아 올려 있을까. 십 층 허공에서 본능적으로 느낀 위기의식에서 나온 놀라운 힘이었을까.
전에는 며칠마다 한 번씩 화분에 돋는 괭이밥을 뽑아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저도 목숨 받아 살아보겠다고 저렇게 기를 쓰는데 내가 원하는 화초가 아니라고 너무 모질게 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시인은 화분에 아예 잡초를 기른다지 않던가. 그래서 한동안 내버려 두기로 했던 것이다. 끊임없이 피고 지는 노란 꽃도 귀여운 소녀처럼 깜찍했다.
겨자씨만한 씨가 씻겨가지 못하도록 착 착 쏘아붙인 놀라운 생명의지에 나는 그만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