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잃었다. / 김미옥
장마철 신갈나무 아래에는 도토리가 수북했다. 익어서 저절로 떨어진 게 아니라 누군가 가지째 똑똑 잘라놓은 것 같았다. 채 익지도 않은 걸 왜 벌써 따 내리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하도 극성스레 주워가니 이젠 동물들도 서둘러 양식을 비축하려는 속셈인가. 그러면서도 왠지 귀여운 다람쥐보다는 약삭빠른 청설모 짓일 것 같아 볼 때마다 혀를 찼다.
그런데 알고 보니 범인은 따로 있었다. 도토리거위벌레. 도토리가 채 여물기도 전에 긴 산란관을 주사기처럼 도토리 속에 찔러 넣어 알을 낳고는 주둥이 끝으로 가지를 잘라낸단다. 그것도 떨어질 때의 충격 완화를 위해 반드시 잎이 달린 가지를 택한다는 것이다. 일주일 뒤 깨어난 애벌레는 도토리를 먹고 종령애벌레로 자라 껍질을 뚫고 땅속으로 들어가 겨울을 난다.
천적으로부터 애벌레를 보호하기 위해 도토리 속에 알을 낳고 그 도토리를 따 내리는 거위벌레의 지혜, 생명을 전하려는 뜨거운 삶의 진실에 나는 말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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