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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3-12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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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회활동 문학은상상력의세계다.
글쓴이 : 김경옥 조회 : 18,468
호롱불ㅡ노정희

형광등불빛이흔들렸다. 두어번껌벅이더니이내어둠이방안의흔적을지운다. 새벽녘이라손을쓰지도못하고억지잠을청해본다. 하지만그것도쉽지않다. 어둠속을더듬거리며기억의발자국을떼었다. 한발, 두발…….

갑자기불빛이살아났다. 콧김에나풀거리는불꼬리는허공에붓질하듯섬세하고날렵했다. 무슨생각을하는것일까, 꼭다문입술은조각처럼단단했고자그마한체구는불빛의음양을받아옹골차다. 새벽에눈뜨면항상그모습의어머니가호롱불앞에앉아있었다. 자식들의속옷을벗겨기슬(蟣虱)사냥을하였다. 두손톱을맞대어누르면 “톡”소리가났다. 옷의솔기인지, 아님서캐인지호롱불에옷을스치면 “지지직” 소리가방안의공기를갈랐다.

사냥이끝난옷은이불속에넣어덥혔다가다시입혀주는어머니. 뒤꿈치닳은양말은천을덧대어꿰매고, 뜯어진옷의솔기와단추까지꼼꼼하게손을보았다. 반짇고리를살강에올리고나면아침찬거리를위해함지박가득담아온감자를깎았다. 사각사각귀를간질이는소리, 뽀얀감자속살은모서리부터색깔이바랬다.

어머니의밥상머리교육은엄했다. 뿔딸따리는(플라스틱슬리퍼)마당을걸을때마다질질끌렸다. 발치수보다큰신발을신고소리나지않게사뿐히걷기란여간신경쓰이는일이아니었다. 어른앞에서맨발로다녀도안되고, 어른보다수저를먼저들거나먼저내려놓아서도안되었다. 호랑이보다더무서운엄마였다.

엄마가온전히나의편이되는시간은잠자리였다. 잠결에몸을뒤척이면팔베개를해주었다. 엄마품에안겨젖을만지고젖꼭지를배배틀면서손장난을했다. 습관은은연중에행하는몸의언어다. 지금도엄마를마주할때웃옷을들추어젖을만지고젖꼭지를당긴다. 늘어지고쭈그러들었지만아직도젖꼭지는손장난하기그만이다.

어머니도몸에밴습관은그대로삶의방식이되었다. 새벽녘에돋보기를끼고앉아콩이며팥을고르고있다. 자식들에게직접일군농사거리로먹을거리를챙겨보내야마음을놓는다. 쌀이며, 메주며, 김장거리며, 하다못해약초뿌리까지도손수장만하여엑기스로만들어보낸다. 아직까지자식덕으로살지않겠다는팔순어머니는정신줄놓기전에하는말씀을지켜달라고하신다. 행여당신몸이아프면뒷산어귀에있는요양원에보내달란다. 동네분들도요양원에있으니심심치않을것이라며자식들한테짐을지우고싶지않단다.

평생을자식위해헌신한어머니시다. 어느부모가자식을위하지않겠냐마는, 어머니의자식사랑농도는유별날정도로각별했다. 어릴때부터엄하게가르친것은사회에서손가락질당하지않기를바랐기때문이란다. 당신자식들은사회의건강한일원으로당당하게살아갈것이라는믿음을가지고계신다.

호롱불이흔들렸다. 어머니는조용히자신을태웠다. 거친삶의바다에서항해하는자식들이언제든지찾아올수있도록등대를지으셨다.

허기진새벽이길다. 나는어둠속에서천천히어머니에대한기억을먹는다.(수필집 [빨간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