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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7-26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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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회활동 딸바라기
글쓴이 : 김경옥 조회 : 17,636
딸바라기 - 김경옥


노인 병원 3층에서 영미엄마는 주차하는 사람들을 응시한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정신병원 본관 입구를 향해 걸어오면서, 왼쪽의 노인 병원 벽에 붙어 있는 벽시계를 보고 출근시간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음~! 좋아, 9시 10분 전이군.” 조금 더 시선을 왼쪽으로 향해 보면, 3층 유리창에 영미엄마의 얼굴이 붙어있다.

봄꽃들의 향연이 끝나더니‘이젠 여름 꽃, 해바라기 세상이네용~!’바로 그 시계 아래쪽으로 내 키만 한 키에 가냘픈 허리를 꼿꼿이 세운 60여 송이 해바라기 꽃들이 동시에, “방가 방가~!”, 반갑다고 달려온다. 약 6자쯤 거리를 두고, 자태가 멋진 소나무 한 그루를 빙 둘러 둥그렇게 파진 고랑 따라 두 줄기씩 짝을 지은 30여 쌍의 해바라기들이 마치 그 소나무의 호위를 맡은 호위병들 인양 자랑스러워한다. 7월로 접어들자마자 장마 비가 쏟아진다. 먹구름에 가려 해는 보이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샛노란 해바라기 꽃들은 일제히 마치 숨은 해를 찾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출근하는 자들을 향해 얼굴을 든다.

3층 햇살병동에서 영미엄마를 처음 만났을 때, 50여 년 전 여고시절의 친구 영미의 얼굴이 재깍 떠올랐다. 똑 닮았다.“영미엄마? 영미 친구입니다. 여기서 영미를 만날 수 있겠군요~! 보고 싶어요.” 몹시 궁금했다.‘영미는 왜 그 녀의 엄마를 노인병원에 입원시켰을까?’ 여고시절 때, 그녀는 무척 영특했던 친구로 기억된다. 영미엄마가 영미의 학교생활을 잘 관찰하였다가 영미에게 적시적소(適時適所)에 적언(適言)을 제시할 수 있도록 조언을 곧잘 해준다고 했었다. 영미는 남편 복도 타고났나보다. 영미남편이 영미엄마의 수다스러우나 재치 있는 언변으로 분위기를 밝게 함을 좋아한 덕에, 영미는 친정살이를 하고 있단다. 영미남편이 회사일로 힘들어 할 때도,“자네 나이 시절, 자네와 같은 문제에 봉착했을 때, 영미아빠는 이러이러하게 풀어나가데 마는, 자네도 이러이러하게 할 수 있겠는가?”영미남편은 영미엄마와의 소통을 즐겼다.

영미의 막내딸이 시집을 간다. 혼수준비 등등 영미의 마음이 바빠졌다.
“엄마, 엄마의 막내 손녀딸, 시집을 잘 보내고 싶거든, 엄마와 같이 다닐 수가 없어. 우리 약속, 오케이?”
영미엄마는 여러 환우들과 함께 사는 요양병원 병실생활에 익숙해졌다. 온 종일 책 한권을 들고 복도에서 서성이는 이와도 다정히 지내고, 콩나물을 다듬든 뜨개질을 하든, 텔레비전을 켜놓고 듣는 둥 보는 둥 그저 TV 앞에서 노는 이와도 친하다. 무릎이 아파서 걸음을 뒤뚱거리므로 작업치료실에 갈 때나 물리치료 받으러 갈 때는 조무사의 손을 잡고 다른 손은 지팡이를 짚고 가거나, 아예 휠체어에 앉아서 간다. 영미엄마는 매 식사 끼니때마다 식전에 먹는 약이 있고 식후에 먹는 약이 있다. 그녀 스스로 챙겨 먹지 못하므로, 간호사가 주는 대로 먹고, 혈당 측정이나 혈압재기, 체온 측정, 등등 간호사의 요구에 그냥 순응한다.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아이고~! 내 팔자야?”한 숨 쉬고 있을 때, 그녀에게 면회자가 왔다며, 간호조무사가 단장시켜 휠체어에 앉혀준다. 병원 앞 산책로로 나왔다. “와~!, 좋다.”휠체어 뒤에서 전화 받는 딸의 목소리가 들린다.
“팔라우 섬에 도착하여 투명한 바다 속의 산호와 열대어를 보러 배타고 나간다고? 넌 수영을 못하잖아! 그 넓은 바다에서? 아이고, 얘야! 제아무리 장비를 다 잘 갖추었다고 해도 그렇지 ~?~, 튜브를 꼭 붙잡아라.”
영미엄마의 한 손이 휠체어 손잡이를 꼭 쥔다. 다른 손은 팔을 휠체어 뒤로 쭉 뻗어 영미의 치마를 붙잡는다.

어느 날, 교회 심방전도사가 두 권사와 함께 ‘기도합시다." 심방을 나왔다. “이 기회에 성경을 정독하면 어떨까요?” “그래요, 스스로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의미가 있어요.” “ 좋은 생각이 떠오를 땐, 적어두었다가 주시면, 글을 다듬어서 일기로든 편지로든 우리 교회 회보발행 때 실을 수 있겠네요.” “한 평생을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 오셨는지, 권사님이 걸어오신 지금까지의 교회생활을 후손들에게는 알려주셔야지요?” “그렇지만, 당장 권사님이 직접 쓰기는 어려우시겠죠? 누가 대필자로 적격일까요? 따님?”
영미엄마 마음에 빛 꿈이 싹트기 시작했다.

갑자기 주차장이 한가롭다. 병원 입구에 메르스 감염 예방으로 면회객 사절이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렸다. 영미엄마는 간호사가 전달해주는 영미의 전화통화소식만을 듣는다. 그녀는 결심했다. “그래, 맞아. 영미더러 지금까지 나누었던 대화들을 글로 적어달라고 해야겠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메르스 관련 변경사항 소식이 들린다. 곧 1층 면회실에서 조건부의 짧은 면회가 허용된다고 알려준다. 잠시나마일지라도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면회가 허용되었다.

매일 매일 영미엄마는 작업치료와 물리치료를 열심히 받는다. 목욕을 간호보조사 도움 없이 스스로 하려고 노력한다. 식사도 흘리지 않고 혼자서 잘하며, 때 맞춰 간호사가 챙겨주는 약도 꼬박꼬박 잘 받아먹는다. 곧 영미가 데리러 오겠지~! 영미의 차가 주차장 속으로 들어와 주차하기를 기다린다.

딸바라기가 된 영미엄마는 “영미가 오늘은 나타날 거야~!” 고개를 고추 세운다.